▶ 고흥 팔영산(608m) - 3/3


▲ 금사리쪽 작은 마을도 보입니다.




▲ 7봉쪽도 돌아봅니다. 풍경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있습니다. 전체적인 조망을 볼수 있을지...




▲ 13:55 8봉 적취봉(績취峰, 591m)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여/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 팔영산 깃대봉 표지석있는 곳을 당겨봅니다.




▲ 7봉에서 바다쪽으로 흐르는 능선뒤로 바다가 보입니다.




▲ 이 암봉을 내려서면 이제는 흙은 밟습니다.




▲ 마지막으로 8봉 표지석을 담고는 출발합니다.




▲ 내려올때는 금방입니다.




2봉에서 7봉까지는 탈출로가 없습니다.

7봉에 와서야 탈출로가 있습니다.


▲ 깃대봉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 오~ 기다리던 팔영산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 14:07

팔영산 깃대봉 정상석에 거의 도착합니다.


▲ 더 잘보이는데 앞의 전기선이 안습입니다.




▲ 9봉인 깃대봉 입니다.




▲ 인증샷을 부탁합니다. 뒷쪽의 건물은 경찰초소 입니다.




▲ 전깃줄은 나오지만 한번더 찍어봅니다.




▲ 14:10 1봉에서 습득한 핸드폰 주인을 찾아서 경찰초소에 들어섭니다.
    마주치는 산객들에게 물어보니 초소에 몇분 들어갔다고해서 들어가 봅니다.
    먼저 강아지가 짖으면 반기는데 초소장 되시는 분이 들어오랍니다.




▲ 들어가니 세분이 식사중입니다. 아까 먼저간 분들입니다. 그중 한분이 주인이더군요.
    식사하고 가래서 후딱 라면하나 끓이고는 따뜻하게 식사하고 고마운 맘에 이렇게 인증샷을...^^;
    '여자빼고 다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 식사 후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가 어디냐고 여쭤보니, 오늘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사인사 후 다시 8봉쪽으로 내려오다 이정표를 만나면 탑재쪽으로 내려갑니다.


조금 미끄러워 스틱을 꺼내듭니다.


▲ 이렇게 편백나무 숲도 지납니다.




편백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엔 이렇게 임도를 만나게 됩니다.


▲ 뒤를 돌아보니 편백나무 숲이 엄청납니다.




▲ 8봉인지 8봉의 앞쪽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15:06

탑재입니다.

능가사 약 2km 남았습니다.

조금 게이름을 부린듯 합니다.


아까 경찰초소에서 식사를 같이 했던 분들입니다.








능가사의 담벼락입니다.

다른 절의 담벼락에 비해 낮고 정겹습니다.








응진당의 불상입니다.


▲ 능가사 응진당 모습니다.




▲ 능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대웅전 앞쪽의 거대한 고목이 두그루 있습니다.










▲ 대웅전 처마밑으로 보이는 팔영산 봉우리들 입니다.




▲ 팔영산 8봉을 줌인해 봅니다. 왼쪽부터 1봉에서 7봉까지 입니다.




▲ 조금 뒤로빼서 8봉까지 담아봅니다.




▲ 명성?에 비해서 가람이 너무 검소하다고 해야하나? 암튼 절 같습니다.




▲ 능가사 범종각 입니다.





▲ 능가사 범종은 1698년(숙종 24)에 주조된 것으로 이 종을 치면 인근 점암면 일대에 울려퍼질 정도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탐을 내 헌병대까지 끌고 가 종을 쳐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 꽃은 동백꽃인데... 잎이 아닌것 같습니다.




▲ 일단은 동백꽃이라 부릅니다. ^^;;




▲ 좌에서 시계방향으로 증장천왕,광목천왕,지국천왕,다문천왕 이라 적혀있는데,
   백과사전이나 다른곳을 찾아 보니, 시계방향으로 지국천왕,증장천왕,다문천왕,광목천왕
   되어야 맞는줄 알았습니다. 다음은 고흥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의 사천왕상은 예외없이 무장형(武將形)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손에 들고 있는 지물도 다양하다. 통일신라말에는 고려초까지의 지물을 보면 동방 지국천은 칼이나 창,
   남방중장천은 칼이나 금강저 또는 보주, 서방광목천은 칼이나 금강저, 북방다문천은 보탑이나 창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조선조 후기가 되면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즉 동방천은 칼, 남방천은 뱀이나 보주,
   서방천은 보탑이나 창, 북방천은 비파를 잡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중국의 원이나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라마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계의 사천왕은 지국천이 비파, 중장천은 칼, 광목천이 새끼줄이나 뱀,
   다문천은 족제비 또는 보탑을 들고 있다. 능가사의 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이 비파, 남방증장천이 칼을 쥐고
   있고, 서방광목천이 뱀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청나라를 통한 라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사천왕상 [출처. 두산백과사전]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손바닥 위에 보석을 올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화난 듯한 눈을 가지고 있다.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검은빛을 띠며 비파를 잡고 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입을 벌리고 있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淸淨道場)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는 수행자의 마음 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 한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 능가사는 일주문이 없고, 천왕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 안쪽에 시주자 명단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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